[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레바의 합격수기 물량공급의 잡다한이야기

[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레바의 합격수기

ETC2014.09.21 00:09물량공급

 

 

원본글 : http://orbi.kr/0004816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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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3학년.. (이제 늙은이네요..) 재학중인 레바입니다.


오르비 처음 시작한지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3년정도나 흘렀네요.

원래 오르비에 2년 전 수기를 올렸었는데, 완성도가 부족해서

이야기 형식으로 써본 수기 올려봅니다.

흐음 지금 시기에 볼 수기로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심심풀이 이야기 본다 셈 치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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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세간에 남을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 존재했던 사람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한 소년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고,

이 기록은 소년이 어떠한 일들을 겪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에 대해 관한 기록이다.









기록을 읽으시겠습니까?

▶ Yes / No






















 나는 도대체 왜 사는 것이지?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릴없이 워크래프트 3 유즈맵을 하며 나는 공상에 빠졌다. 나는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가?

유치원 시절에는 많은 꿈을 갖고 있었다. 노벨상을 타는 과학자가 되어서 부자가 되고,

여자들이 줄을 서면 골라서 결혼도 하고.. 대학교는 당연 하버드 나오고, 람보르기니같은 외제차도 몇개 끌고다니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직 하고 있는 게임에서 이기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지금의 내 성적으로 갈만한 대학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아직 고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고,

중학교를 막 졸업할 예정이긴 하지만,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 말한 바에 의하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등수는

중학교에서의 등수에 2를 곱한 숫자라고 했다. 그러면 인서울 대학교도 간당간당한데..

나중에 만화방이나 차려서 살까? 하하..

하루에 8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나의 실력으론 왠만한 게임은 다 이겼다. 그때에도 그냥 가볍게 한 판 이기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상을 봤다.

책상에 있던 것들은 전부 내가 봤던 만화책들. 내용도 다 알고 있어서 지루할 것이 뻔했다.

무엇을 하지? 한참 동안 고민을 하였다.





그 때, 나의 눈에 어떤 책 한 권이 들어왔다.




                       [스트링 코스모스]




이 책과 나의 만남에 의해, 나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이 책이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미쳐버리게 만들 줄은 그 당시 아무도 몰랐다.

[스트링 코스모스].

이는 정말 깊은 마력을 가진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당시에는 이 책의 내용은 그 어떠한 만화책보다 재미있었다.

당시 물리학계에 대두되었던 끈이론에 관한 책이었는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세계에서 끈이론으로 가기까지,

상대론과 양자에 대해 매우 쉽게 설명해놓은 책이었다. 나는 물리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기껏해야

F=ma정도만 알고 있었으며, 중력 가속도가 9.8m/s^2인 것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나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스트링 코스모스]라는 마법의 서를 읽고 나서, 나는 끈이론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끈이론을 검색해가며 많은 물리학 서적을 찾기 시작했고,

물리학 기본 교양서로 불리우는 [엘러건트 유니버스]나, [평행 우주], [파인만 시리즈] 등

수많은 물리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내가 세계 최강의 물리학자가 되어서 이 세계의 비밀을 밝혀 내겠어."

   "이 세계의 신이 남긴 원피스는, 물리학의 끝에 있다."



드디어, 아무 생각없이 게임만 하고, 잉여롭게 보내던 나에게도 어렴풋이 '꿈'이란 것이 생겼다.

바로 '세계 최강의 물리학자'가 되는 것.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 지도 모르는 그런 꿈을 위해, 나는 미친듯이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렴풋한 '꿈'이 있다면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겠지?

흐음.. 그러려면 이미 고등학교를 과학고등학교로 진학하기엔 늦었고..

대학교를 우리나라 최고의 물리학과로 가야겠다.

그래.

난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12학번]의 자랑스러운 학부생이 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당시 이룰 수 있었던,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해 보이는, 그런 목표였다.

공부를 미친 듯이 하면 가능한 목표이긴 하지만, 지금의 나의 상황으로는 오직

이상향(Ideal)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그 곳.

나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라는 곳을 향한 미친 듯한 목적 의식을 갖게 되었고,

결코 믿지 않던 신에게도 부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평생 여자 친구가 없어도 좋으니, 아니 내가 마법사로 살아도 좋으니!

    제발 날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에 합격시켜줘!"




그 때의 난, 이 기도가 나에게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물리천문학부란 곳은 그 어떤 이성보다도 매력적인, 매혹적인 곳이었다.

그리고 난 닥치는 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 국어와 영어, 수학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비록 영어는 예전에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다닌 청담어학원에서 쌓은 베이스가 있어서

손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로 국어와 수학에 비중을 두고 공부를 했다.

시중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내가 문제집을 골랐다.

중학교 때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들여다 본 문제집 말고 내가 자의적으로 사는 문제집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들이 자주 애용하는 수학의 정석을 살까? 아니면 개념원리를 살까?

어라? 이 문제집은 또 뭐지? 흐음.. 쎈을 살까? 이건 문제 양이 너무 많아보이는데..

이렇게 여러 고민을 하며, 난 국어와 영어의 경우 EBS 문제집을, 그리고 수학의 경우 정석 실력편을 샀다.

그 때의 난, 현재의 내 실력에 대한 인식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공부하면 되겠지. 고등학교 3년동안 미친놈이 된다면, 나도 서울대생이 될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에, 무작정 어려운 난이도로 하는 것이 좋은 것인줄 알았다.

즐기던 게임도 접고, 독서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현재 나는 매우 공부를 못하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가기 위해선

엄청난 공부량이 필요하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었다.

국어의 경우, 문제를 풀다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매우 많았다. 분명 난 이게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게 답이 아닌 것이지? 왜 내가 틀린거야!

항상 내 멋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그렇게 쉽게 고쳐질 리 없었다. 국어도 결국 논리적으로 풀어야 하는 것인데,

국어는 그냥 내 생각대로만 하면 풀릴 줄 알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학의 경우도 난관에 부딪히긴 마찬가지였다. 겨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내용인데..

복소수도 너무 어려웠고 원의 방정식도 너무 어려웠다. 특히, 연습문제는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난 좌절하지 않았다. 난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것이니까..

그래도 영어는 청담어학원의 버프를 받아서 잘 할 수 있었으니까..

12월 말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1달 반이 지난 2월 중순즈음엔 나름 실력이 붙기 시작했다.

정석도 한 회독을 다 끝내서 두 번째로 보기 시작했고, 나름 손도 못댔던 연습문제도 풀리기 시작했다.

국어도 문제지의 절반을 X 표시로 채워 놓았었는데, 점점 O 표시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고등학교 배치고사날이 다가왔다.

드디어 나의 공부가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뒀는지 알게 되겠군.

배치고사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이었다. 그런데 문제를 접해보니,

국어는 좀 어려웠고, 수학은 내가 풀던 문제보다 훨씬 쉬웠으며, 영어는 나름 할만했었다.

특히 수학을 풀 때 나의 노력이 결실을 발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웠던 실력 정석 연습문제를 붙잡고 끙끙댔던 내 자신이 생각났다.

진짜 사람은 하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2009년 3월 2일 고등학교 입학식.

3달 전까지만 해도 기본도 모르던 나의 성적은




            [전교 5등]





전교 5등의 입학 성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장학금 컷에 걸쳐서 단상에 서서

교장 선생님에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멀게 느껴졌던 전교 한자리 등수가 나에게도 찾아오다니..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세상은 절대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가 오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받아본 [전교 5등]이라는 등수..

이 등수는 정말로 믿기지 않는 등수였다.

'내가 이런 등수를 받아보다니..', '역시 빡세게 공부한 효과가 있었구나..'

이 때의 결과가 자만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일까?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 고등학교 3월 모의고사에서는 그렇게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언어가 3등급에 수학이 1등급 끄트머리, 외국어가 2등급에..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성적이 나왔다.

사실 나는 국, 영, 수 위주로 공부했지, 탐구과목들은 아예 손을 대질 않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계획도 세우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부했는데, 저런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했던 것이다.

이 때, 전국 백분위로는 다행히 91%정도가 나왔다. 상위 9%정도의 성적.

이 성적으로 서울대는 택도 없었다. 물론, 중학교 시절보다는 매우 높은 성적이긴 했다.

하지만 서울대를 목표로 한 나에겐 이는 매우 부족한 점수였고, 나 자신에게 큰 불만을 가져다 주었다.

정말 내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그래도 서울대를 가고자 하는 욕망을 누를 순 없었기에,

서울대학교에 어떻게 입학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때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지역균형 선발전형].

한 학교당 3명씩 추천을 받을 수 있으며, 오직 내신만으로 선발하는 전형이었다.

당시의 난 내신은 오직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지역균형 컷이 80점 만점에 78.5점 정도였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전형으로 보였다.





   "그래. 난 내신으로는 전교 3등 안에 들어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지역균형 전형으로 합격하겠어!"





이 때부터였다. 3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밤 11시까지 남아서 고등학교 3학년 형들과 같이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겨울방학 때는 국어, 영어, 수학만 했지만, 이젠 다른 과목도 다 골고루 하였다.

서울대는 주요과목 뿐만 아니라 예체능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등급으로 평가하므로, 그 어떤 과목이라도 성실히 공부했다.

매일 수업한 내용은 최소 5분정도라도 복습을 했으며, 주말마다 몰아서 한 번씩 더 복습했다.

남들은 다 뛰어놀때, 난 악착같이 공부했다.

3월동안은 교과 수업 복습을 철저히 하는 것 외에도, 남들보다 뒤쳐진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국어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았고, 영어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뒤통수를 맞았고,

그나마 수학이 1등급이 나온 것이 위안이었지만,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몰랐고..

좋아했던 게임도 완전히 접어가면서 내신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다.

매일 집에 가서 인터넷 서핑 조금 하는 것을 위안삼아 매일 공부했다.

친구 없이 외로이 고3 형들과 야자를 할 때도, 집에 가면 약간 놀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다.

공부하기 정말 힘들 때, 난 3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서울대학교의 캠퍼스를 누비며 멋있게 물리 수식을 써내려가는 나의 모습..

서울대 잠바를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

진짜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4월이 되니 본격적으로 전교권에 든다는 친구들이 내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 때의 난, 저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3월 모의평가처럼

기초 부족으로 무너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겐 고등학교 와서의 압도적인 공부량이란 자신감이 더 컸다.

중간고사 결과, 국어 과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1등급 커트라인 안에 들었던 것이다.

국어 과목의 경우, 진짜 대비가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친구들의 경우 학원에서 많은 문제를 나눠주며 대비를 할 수 있었지만,

난 국어 내신 대비법을 구체적으로 몰랐기 때문에 공부량이 많다 하더라도 효율성 면에선 뒤쳐졌던 것이다.

그 때 어느 정도 내신에 대한 감을 잡았다.





   "내신은 선생님이 내는 문제다. 그러니, 출제하는 선생님 스타일에 맞춰서 공부를 하자."



중간 고사가 끝나고, 나는 슬슬 모의고사 공부에도 돌입하기 시작했다.

비록 난 지역균형을 노리는 체제로 공부했지만, 혹시 몰라서 정시도 같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전형만 준비하는 것보다는 두 전형을 한꺼번에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니까..

이 때부터였다. 본격적으로 교육청 고1 모의고사 기출을 인쇄해서 풀기 시작했다.

난이도는 나름 할만했고, 주말마다 시간을 맞춰서 풀은 뒤, 남은 시간동안 해설지를 보며 공부했다.

주중엔 교과서 복습 및 시중의 문제집을 사서 풀었다.

1달 동안 이렇게 꾸준히 공부했었다. 남들보다 다르거나 특별했던 것은 없다.

오직 근성 뿐. 나의 특별한 점은 남들과 다른 근성 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고 드디어 치른 6월 모의고사.

난생 처음으로 [All 1등급]의 기쁨을 누렸다.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했던 언어도 1등급, 수리는 안전하게 1등급, 외국어도 제 궤도를 찾았는지 1등급,

약하다고 생각했던 탐구마저도 1등급이 뜨니, 정말 하늘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전국 백분위는 98%. 상위 2%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전교 등수로는 2등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내가 전교 2등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은 진짜 인생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아무 의미 없이 사는 공부벌레인 줄만 알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경지였고, 진짜 공부에 미친 이상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됐었다.

근데 내가 지금 그 위치에 있다. 내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미친, 한 마리의 공부벌레가 되었던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서 미친 듯이 내신 공부까지 하게 되었다.

결과는?

국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 전부 1등급. 오직 국어만이 2등급으로 내 성적표에 남아 있었다.

내신 평균 등급으로 환산하면 난 전교 3등이었다.





    "좋아. 전교 3등이면, 지역균형 티켓도 받을 수 있고, 모의고사 성적도 이대로 오르기만 한다면,

     정시로도 서울대를 뚫을 수 있는 성적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다가온 첫 여름방학.

이 때부터 그의 첫 슬럼프가 시작되는데...

고등학교 1학년 첫 여름 방학.

나는 내신도 전교 3등이 나왔고, 6월 교육청 모의고사도 전교 2등이라는 매우 높은 성적을 거둬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런 상승세라면 수능날 서울대 문도 부시고, 아예 전국 1등까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래서 여름방학동안은 물론 꾸준히 학교 자습실에 가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얼마 안있어 학교 근처의 PC방으로 몸을 옮겼다.

몇 개월만에 하는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게임 몇시간 좀 한다고 전교 2등의 실력이 어디 가겠어? ㅋㅋ"

   "그리고 매일 공부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 좀만 하는건데 뭐 ㅋㅋ"



이렇게 나 자신을 속여가며 게임에 몰두했다.

초반엔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인지 1~2시간 정도만 하고 컴퓨터를 껐다.

어차피 학교에서 받은 성적 장학금으로 점심값이랑 PC방비를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계속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이 판만 더.. 내가 3연패한 채로 게임을 끌 순 없어.. 꼭 이기고 끌거야..

지금 연승중인데 이 기세를 몰아 더 이겨야지..

라고 하며, 워크래프트 3 유즈맵을 미친듯이 즐겼다.

이렇게 여름방학 시작 2주일만에 나의 게임 시간은 공부 시간을 아득히 넘어섰다.

주말마다 시간을 재놓고 치른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실수로 틀린 것은 맞다고 치고 넘어갔다. 아리송하게 맞춘 것도 아는 것이라 하고 넘어갔다.

이렇게 나 자신을 속여가며 난 아직도 1등급 실력이다. 이제 앞으로 나에겐 만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날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개학날이 다가오고, 난 9월 모의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결과는? 어이없는 참패였다.

다행히 수학은 감이 남아서인지 아슬아슬한 1등급을 유지했다. 하지만 나머지 과목이 정말 처참했다.

언어와 사회탐구가 4등급이 나오고, 외국어와 과학탐구가 2등급 끄트머리가 나왔다.

전국 백분위는 보지도 않았다. 정말 이 때 어마어마한 좌절감을 느낌과 동시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적이 그대로인 것이 아니라 떨어진다.' 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가겠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여태까지 놀며 충전해온

공부 에너지를 다 쏟아버린듯한 느낌도 있었다. 매일 악착같이 공부만 하며 살기엔 지친 것이다.

그런 나에게, 나 자신이 약속을 했다.






     "밤 11시까지만 미친 듯이 공부해라. 그러면 집에 와서 1시간은 게임을 해도 된다."





이렇게 나 자신에게 약속을 했다. 그러면서, 절대로 중독이 되는 RPG 게임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확실히 게임 1시간이라는 보상은 내 삶에 있어서의 원동력이 되었다.

집에 가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1학기때의 페이스를 되찾고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제 페이스로 공부를 한 뒤 치른 2학기 중간고사.

나름 선생님들에게 기출문제도 얻고, 한 과목을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의 필기를 베껴가며까지 공부해서

올 1등급이 나올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결과는?

국어만 또 2등급에 나머지 1등급. 계속 국어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원체 국어는 정답이 정답같지 않아보였다. 모의고사도 그렇고, 내신도 그렇고.

답을 달달 외워도 변별력이 약간만 있는 내가 풀어보지 못한 문제가 나오면 털리기 일쑤였다.

'정말 이렇게 계속 국어 1등급을 받아버리면 서울대 지균 갈 점수도 안나오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나의 엄청난 약점인 국어를 보충하고자, 국어 특별 정리 노트를 하나 따로 장만했다.

거기엔 '국어는 앞으로 무조건 1등급이다.' 이렇게 적어 놓고,

자습시간에 국어 자료들을 막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시적 용어라던지,

아니면 어떤 지문의 요약이라던지..

한때는 감독하시는 선생님께서 내 노트 제목을 보고는

'넌 충분히 할 수 있는 놈이다. 넌 될놈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걸 듣고나니 정말 온 몸에 패기가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 난 될놈이다. 내가 물천 문 부수고 들어간다.' 이런 느낌을 미친듯이 받았다.

내신 공부를 하면서도 모의고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학의 경우 안풀리는 문제는 30분~1시간까지 붙잡고 늘어지며, 끝까지 고민했고,

특히 그렇게 고민해서 답을 맞췄을 때의 희열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외국어의 경우도 자만해서는 안되겠다며 단어도 열심히 외우고, 문법 공부도 철저히 했다.

사탐과 과탐도 내신에서 하던 내용을 바탕으로 수능형 문제를 풀며 문제풀이 스킬을 익혔고,

그 노력은 11월 모의고사에서 보상을 받게 되었다.

등급부터 말하자면 2 1 1 1 1 등급이었다.

아직까지 언어를 완벽히 극복하진 못한 것 같다. 2등급이라니..

하지만 수학과 외국어, 과탐에서 좋은 백분위를 얻게 되어서

인생 최초로






               [전교 1등]





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전교 1등]

내 인생 처음 받아보는 타이틀.

내 위에 아무도 군림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정상에 있다.

정말 [전교 1등]이란 타이틀은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전교 2등때의 기쁨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아침 조회시간 때 난 단상에 서서 1학년 모의고사 1등 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 정말 재수없다고 생각했던 집단에 내가 속하게 되니 정말 아이러니했다.

내가 그 미친 공부벌레 중 하나가 되다니..

이번엔 방심하지 않았다. 남은 내신도 철저하게 공부했고, 모의고사 공부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국어 성적'이라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남았던 것이다.

사실 모의고사는 가끔 뽀록으로 1등급이 뜨긴 했었다. 하지만 주로 나오는 것은 2등급..

대부분 2~3등급을 왔다갔다했다. 이렇게 불안정한 국어 점수를 유지하면 서울대를 가지 못할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말고사때는 내신 올 1등급을 쟁취하겠다는 마음으로 국어 위주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국어는 또 나의 믿음을 저버리고 말았다.

2등급 커트라인은 45명이었는데, 난 국어 과목은 전교 41등을 하게 된 것이었다.

3등급이 뜨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나머지 과목은 안정적으로 1등급이 나오긴 했다.

1학년 성적만으로 서울대식 내신 환산 점수를 매겨보니 80점 만점에 77.5점.

물천 커트라인인 78.5점에 비해 한없이 낮았다. 전체 과목 중 2과목만 2등급인데..

커트라인에 못미치다니.. 단지 단위 수가 큰 과목 2개를 2등급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데미지가 클 줄은 몰랐다.

곧 다가온 1학년 겨울방학. 이때는 2학년 내신 공부를 미리 할 수도 없으니,

과학탐구 과목 예습과 수학 1 예습, 그리고 모의고사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2학년부터는 사회 관련 과목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부담도 많이 줄어들었다.

겨울방학때는 절대 PC방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오직 나 자신과 약속한 밤 11시 이후의 게임만 하며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에 투자했다.

아침 10시까지 학교에 간 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략 하루 10시간정도를 공부에 투자했다.

10시간동안 풀 집중하며 매일 공부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다.

내가 특히 약했던 국어에 3시간, 수학 3시간, 영어 2시간, 과학 2시간 이런 비중으로 공부했다.

여름방학 때는 자율학습을 하는 1학년 학생이 나밖에 없었는데,

겨울방학땐 그래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좀 생겼다. 전부 문과 친구들이긴 하지만,

자습하는 같은 1학년이란 이유만으로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고, 금새 친해지게 되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점심, 저녁을 해결할 때에도 같이 편의점에 가서 해결할 수 있었으며,

공부 관련 내용들을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고,

정말 공부할 때 옆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엄청 편안해졌다.

이렇게 난 매일같이 공부했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정말 지루했다.

하루에 1~2시간정도 하는 게임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난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12학번 학부생'이 된 나의 2년 뒤 모습을 생각하며

힘들더라도 계속 공부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한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공부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3월 모의고사에서는 겨울방학때 열심히 공부한 것이 빛을 발했다.

언어가 96점으로 1등급이 나왔으며, 인생 처음으로 수학 만점을 받았다.

영어와 과탐도 모두 1이 나와서 안정적인 올 1등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비록 나보다 더 잘 본 친구가 있어서 전교 2등에 머물렀지만,

수학 만점을 포함한 올 1등급이라는 성적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2학년으로 올라와서는 난 내신 공부 방법을 약간 바꿨다.

국어의 경우,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 숙제를 대신 풀어주겠다면서 문제지를 뺏고(????)

내가 전부 풀어버렸다. 답은 그냥 교과서나 학원 답지를 보며 맞췄다.

친구들도 공부하기 싫었는지 대놓고 나에게 문제지를 주며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했다.

기출문제와 예상 문제를 많이 풀어본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영어도 이런 식으로 공부를 했고, 수학의 경우 한 학기정도 선행학습을 한 버프를 받아

무난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중간고사, 국어를 포함해서 전 과목 1등급을 받았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기말고사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아서

인생 첫 내신 올 1등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1학년때 나보다 내신 성적이 좋았던 두 친구 역시 올 1등급이어서,

총 내신 등수가 전교 3등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내신은 이렇게 좋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고2 6월 모의고사였다.

변명부터 하자면, 문제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진짜 미친듯이 어려웠다.

그리고 내 점수를 공개하자면, 언어 75 수리 가형 75 외국어 90 물1 50 화1 48 지1 50이었다.

언어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시험이 어려워도 70점대 점수는 나오지 않았는데..

수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수외 원점수 240/300.

사상 최악의 점수를 받아버렸다.

등급만 놓고 보자면 언어만 3등급이고 나머진 1등급이긴 했지만 (난이도가 진짜 어려웠다.)

그래도 저 이상한 원점수는 날 경악에 빠지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동안 푼 어떤 모의고사에서도 저런 괴랄한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특히 3월달에 만점을 받은 수리가 갑자기 75점으로 떨어지니 눈앞이 캄캄했다.

3월에 92점 받은 친구는 96점 받고, 나에게 맨날 수학 문제 물어본 친구는 93점 받았는데..

난 75점이라니..

이 때 깨달았다. 난이도는 어떻게든 바뀔 수 있구나..

난 결코 수학을 잘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난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현재까지 공부하며 깨달은 모든 것들을

종이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적어놓고 보니,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공부의 도(??)를 터득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고 2 여름방학, 나를 유혹하는 최대의 적, '스타크래프트 2 - 자유의 날개'가 출시되는데..

올 1등급의 내신 성적을 받았지만, 암울한 모의고사 성적을 갖은 채로 맞은 여름방학.

난 스타크래프트 2에 대한 떡밥이 나올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

학교에서 학비에 보태라고 준 장학금을 사용하여 스타 2 계정 결제를 했다.

그래도 난 고1때와는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공부 시간을 버려가며 게임을 했지만,

지금은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후 집에 와서 스타 2 캠페인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내가 스스로를 잘 절제하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레이너도 정말 잘생겼고, 노바도 너무 이뻤다. (케.. 케리건은?? 응?)

미션을 깨면서 스토리를 하나하나 읽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줄 몰랐고,

정신을 차려보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완전 수면 패턴이 망한 것이었다.

새벽 4시에 자고 오후즈음 되어서 일어나니 자연스레 자습실에 가는 시간도 늦어지게 되었고,

결국 고1때와 별 다를 바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진짜 스타2는 그정도로 재미있었다.

중 3까지 남아있던 게임 폐인의 본성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거진 3일만에 보통 난이도로 캠페인을 다 클리어했고, 이제 업적 달성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주일만에 업적 3000점을 달성했다. 랭킹을 확인하니 전국 업적 랭킹 200위 안에 들었었다.

싱글 플레이로 할 수 있는 업적을 다 하고, 난 드디어 래더 게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스타 2에는 래더 실력별로 급간이 나뉘게 되는데,

당시에는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순이었다. (다이아몬드가 제일 높은 단계였다.)

나는 리그 배치고사에서 5연승을 하며 플래티넘 리그에 배정을 받았고,

계속 래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학 시작 후 3주가 흘렀고, 방학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때, 매 주말마다 시간을 재놓고 푸는 모의고사에서 6월때 받은 점수와 같은 점수가 나왔다.

언어 75점, 수리 75점, 외국어 90점.

이제 깨달았다. 난 스타2 따위에 목을 맬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 실력은 저렇게나 떨어져 있었는데 난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이럴거면 그냥 다 때려치지 그래?

하는 목소리가 나에게 들렸다.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일단 스타2는 잠시 접기로 하고, 가장 시급한 언어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하였다.

언어영역 평가원 7개년 기출 문제집을 산 뒤, 하루에 2세트씩 마구잡이로 풀어댔다.

총 21세트였으니 11일만에 다 동이 났다. 근데 한 가지 문제점은, 그냥 풀고 답만 매겼을 뿐이지,

오답 분석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의 난 정말 스타2에 빠져 있었다는 엄청난 자책감과, 언어 75점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는 압박감에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냥 양치기만 하면 해결되는 줄 알았다. 문제만 많이 풀고, 공부 시간만 늘리면 성적이 오를 줄 알았다.

고1 초반에 내가 저질렀던 오류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의 경우 2학기때 배울 내용을 선행하며 기초를 다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이 때부터 수학과 과학 공부방법은 제 궤도에 올라선 것 같았다.)

외국어 또한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단어도 잘 외워지지 않고, 지문 난이도도 슬슬 높아져 가니

중학교까지 다녔던 영어학원의 버프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방학동안 이렇게 좌절의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니었다.

이 때 학교에서 몇 명 뽑아서 신청했던 포항공대 이공계 탐방 캠프에 내가 선발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하고싶었던 물리와 수학 과목에 대해 탐방하기로 하고, 거기에 있던

대학생 선배들과도 함께 어울려 놀았는데, 정말 재밌었고, 내가 꼭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을 세워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그리고 난 캠프 마지막날, 1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했다.






      "1년 뒤의 너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12학번의 학생이 되어 하늘을 누비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겠지."

       "수능 전국 상위 0.1%는 찍어 줘야겠지? ㅋㅋ 한 번 날아보자."

       "1년 뒤의 나, 기다려라. 지금 내가 너에게 간다."




그리고 개학 직후, 난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았고, 공부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다시 스타2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름방학처럼 미친듯이 한 것은 아니었고, 하루에 3~4판정도만 절제해서 했다.

개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치른 9월 모의고사.

성적은 무난무난하게 나왔다. 언어만 2등급이고 나머지는 전부 1등급. 전교 2등의 성적.

다행히 수학이 100점이라 버틸만 했지만, 언어가 아직도 2등급이란 것이 충격이 컸다.

왜 언어는 1등급이 뜨지 않는 것일까.. 언어도 고정 1등급을 찍어야 할텐데..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단순히 문제를 많이 푸는 것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르는 것을 맞추기 위해 하는 것인데, 왜 정작 모르는 것은 공부하지 않고

본인의 실력 점검만 계속 하는 것인가?

실력 점검을 한다고 실력이 늘진 않는데.. 계속 실력 점검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언어포스'라는 독해력 향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단순히 문제 풀이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기초 독해력에서부터

의미 단위로 끊어읽는 방법 등 여러 기술들을 알려주었다.

이를 병행하며, 2학기 중간고사 대비도 열심히 했다.

중간고사 결과는 무난하게 나왔다. 기말고사만 적당히 잘 치면 전 과목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래더 게임에서 계속 이긴 결과,

플래티넘에서 다이아몬드로 승급이 되었다.

나도 드디어 스타2의 최상위권에 올라선 것이었다.

내신 성적도 잘 나오고, 스타2에서도 잘 풀리고 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인생 최대의,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가 찾아왔다.

10월 말 즈음이었던가? 나는 스타2 다이아몬드 리그까지 올라가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이 기세로 계속 공부를 해 나가면 11월 모의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내신도 올 1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련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교문의 언덕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엄청 찼다.

'내 체력이 이렇게 약했나? 평소에는 전혀 힘들이지 않았던 부분인데?'

사실 이틀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계단만 올라도 숨이 헉헉 차고,

그냥 100m만 걸어도 마라톤을 뛴 것처럼 숨이 벅찼지만, 내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줄 알고

평소와 같이 공부하였다.

이 상황이 4일쯤 지속되니, 무언가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계단만 걸어도 헥헥대는 나의 모습을 보고

담임 선생님께서 오늘 하루만 자습을 쉬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그냥 자습하겠다고 했지만, 그냥 하루쯤 안하는 것이 어떠냐 해서

담임 선생님의 권고로 결국 병원에 갔다.







진단 결과는?







            [폐 양쪽에 구멍이 3개 뚫렸으니 지금 당장 큰 병원으로 가서 입원해라.]







           뭐라고?






            폐에 구멍이 뚫렸다니?





            생물 교과서에서만 보던 기흉에 내가 걸린거야?





            말도안돼!!!!!!!!!!!!!!!!!!!!!!!!!!!!!!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저 말을 듣고, 난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몇 초 뒤, 아.. 폐에 구멍 뚫리면 어때 ㅋㅋ 공부는 할 수 있잖아? 하며 그냥 태연하게 퇴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입원 안하면 숨 못쉬어서 죽는다고, 당장 부모님 모시고 와서

자신이 수련받은 병원이 순천향 병원이니 이곳에 가서 당장 수술 받아라.

이렇게 의사분께서 말씀하셨다.






         "입원? 입원 몇일이나 해요? 그냥 수술만 받고 바로 집에 갈 수 있는거죠?"





입원하면서 공부시간을 날린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였기에,

진짜 절박하게 입원 기간을 줄일 수 없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구급차에 실려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하루만 늦게 왔어도 죽었다니..

그냥 병원 안가고 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신 공부도 못하고, 아예 서울대에 갈 방법이 완전히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자신이 정말 저주스러웠다. 평소에 운동좀 열심히 할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순천향 병원에 도착하고, 도착하자마자 난 응급 1순위 환자가 되어

그냥 병상에서 응급 처치 수술을 받았다.

추천서를 받은 의사분께서 엑스레이랑 내 호흡량을 보시더니

곧바로 수술 세트를 준비하고, 응급실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폐에 관을 꽂아야 한다며 마취 주사를 놓자마자 메스로 옆구리를 갈랐다.

진짜 미친듯이 아팠다. 칼에 베이면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아직 마취 안됐다고 말을 해 보았지만, 마취고 뭐고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좀만 참으라며

수술을 계속 진행했다. 메스로 옆구리를 째고, 갈비뼈 사이로 관을 집어넣었다.

관과 뼈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는 정말 역겨웠다. 폐에 신경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폐에 신경이 있었다면.. 폐가 찢어질 때랑 관을 넣을 때 얼마나 아팠을 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큰 고통은, 내가 서울대를 갈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2주일간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뭐???? 2주일이라고???? 2주일동안 공부도 못하고 멍때리며 살아야 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주간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쉬면 감도 떨어지고,

수업도 2주일동안 못듣고, 그렇게 되면 내신은 자연스럽게 망하게 될 것이며,

내가 노렸던 지역균형 전형은 그냥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끝이 없었다.

이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응급 처치 수술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정식 수술은 다른 환자들 다 제끼고 내일로 잡혔다고 한다.

그만큼 내가 응급 환자였나보다.

수술 하기 직전까지 숨을 1분에 한 번 꼴로 쉬었다. 과장이 아니다.

숨을 쉴 때마다 폐에 칼을 1000개쯤 꽂는 것처럼 엄청 아팠다.

사실 폐가 아픈 것이 아니라, 관을 꽂아서 신경에 닿은 부분이 정말 아팠다.

숨 쉬기도 힘든 고통과,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말 저 하루는 최악으로 보냈다.





그리고, 수술 당일날이 되었다.

수술 당일날, 난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다.

얼굴에 마스크가 씌이자마자 난 깊이 잠들었고,

3시간쯤 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내 가슴 양 옆에는 각각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호치케스로 묶여 있었다.

수술이 끝난 뒤 1시간 단위로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등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지만,

나는 이제 2주일간의 공백을 어떻게 메꿔야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운이 좋게(??) 1인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진통제를 맞으면 병상에서도 충분히 공부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입원해 있다고 공부를 못한다는건 그냥 핑계였다. 분명 공부가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난 바로 어머니에게 집에 있는 문제집 전부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병문안을 오겠다는 담임선생님께 진도 나간 내용에 관한 자료를 같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난 그렇게 공부 자료들을 받고, 매일 진통제를 맞아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공부 계획같은건 없었다. 진통제를 맞으면 미친듯이 졸렸다. 그래서 2시간쯤 자고 2시간쯤 공부하고,

또 2시간쯤 자고 2시간 공부하고. 정말 지루하게 짝이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병상에서 움직이질 못하니 아예 답답했다. 진짜 병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병원 안에서만 2주일간 생활한다는게

얼마나 끔찍한지 알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했었다.

TV에서도 재밌는거 하나 안했고, 게임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불평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이렇게 자는 시간에도 남들은 공부할텐데, 내가 놀 생각까지 하면 진짜 영원히 뒤쳐지는거다. 라고 생각하니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여기서 돌아다니는 의대생 분들도 학창 시절엔 공부를 되게 잘했을 것 아닌가!

내 방에 들어오는 의사분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런거 다 까먹었다고 하시면서 왜 굳이 입원하면서까지 공부하냐고..

정말 미친놈이라고 그러셨다.

하지만 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가기 위해선 미친놈보다 더한 놈도 될 수 있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친구들도 자신들의 필기를 들고 병문안을 와줬고, 나는 그 내용으로 내신 공부를 대체하며

모의고사 공부도 같이 병행했다. 진찰 받고 엑스레이 찍고 자는 시간을 다 빼니

공부시간이 대략 하루 6~7시간은 나왔다.

6~7시간뿐이긴 했지만, 그리고 그 동안에도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며 해야 해서 효율이 그렇게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난 공부의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다.

스타2 다이아리그를 찍고 한 판도 하지 못한게 상당히 아쉬웠긴 했지만, 그래도 꾹꾹 참아냈다.









입원한 지 1주일 반이 지났다. 3일 뒤면 퇴원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약 10일간 나름 공부를 많이 하긴 했다.

내신은 진도에 뒤쳐지지 않을 만큼 공부를 했고, 모의고사도 총 2세트를 풀고 분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폐에 박혀있는 관을 뺐는데.. 이때가 참 고통스러웠다.

관을 빼는 순간 공기가 폐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곧바로 구멍을 꿰매야 했기 때문에

마취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마취 없이 옆구리의 호치케스를 뽑고, 관을 뽑아내고, 다시 호치케스로 살을 찝었다.

게다가 바람이 들어가면 안돼서 숨도 쉴 수 없고, 입을 뻥끗 해서도 안됐다.

그냥 혀를 깨물어가며 고통을 참아냈다. 정말.. 이건 미친짓이었다.

폐의 관을 뺀 뒤에도 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며칠 더 남아있어야 했다.

관을 빼고 나니 진통제를 더 맞을 필요도 없었고, 나름 공부시간도 많아졌다.

모의고사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고, 내신 진도도 꽤 뺄 수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원날이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퇴원날 바로 다다음날이 11월 모의고사 날이었다.

사실 난 이 모의고사 성적을 그렇게 기대하진 않았다.

입원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진 못했으니까..







퇴원을 마치고, '왕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퇴원한 지 2일 뒤 치른 모의고사.

나는 사실 이 모의고사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최선을 다해 치르긴 했지만, 병원에서 공부한 내용이 그렇게 많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그만한 점수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기까지 평소처럼 내신 공부에 열중했다.

병문안 와준 친구들의 필기 덕분에 진도 뒤쳐진 것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선생님들도 나름 전교권 학생이 도와달라 하니 잘 도와주셨고, 내신에 필요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었다.

모의고사를 치르고 2주쯤 지났을까? 드디어 성적표가 나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왕의 귀환]






이 실현되었다.

전 과목 1등급에 수학은 100점이었고, 전교 1등의 성적을 거머쥔 것이었다.

아마도 입원 하기 전 꾸준히 공부해왔던 것이 실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는 거의 감 유지식으로 공부를 했는데도, 엄청 좋은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저 성적을 받고 기만하지는 않았다.

1학년때도 전교 1등을 거머쥐었다가 몰락한 적이 있지 않은가? 같은 실수는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뒤에도 열심히 내신 공부를 해서,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전 과목 1등급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1~2학년 내신 총합 1.10등급. 서울대식 환산 점수로는 약 80점 만점에 79.3점정도가 나왔다.

서울대 지역균형에 충분히 합격 가능한 점수였고, 3학년 1학기때만 올 1등급을 받는다면,

난 드디어 서울대생이 될 수 있는 거였다.

게다가 전교 4등과의 내신 격차도 꽤 커서, 이대로만 간다면 지역균형 티켓을 받는 것도 문제없어보였다.









이제 나도 예비 고3이 되었다. 11학년도 수시 결과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고, 서울대의 입시 요강도 발표되기 시작했다.

서울대의 새 입시 요강을 보고, 난 정말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역균형 지원 학생들 전부에게 면접 기회를 주는 대신, 학교 당 추천 인원수를 2명으로 제한한다.]





뭐라고? 나 내신 전교 3등인데? 내 앞에 1.01이 있고 1.04가 있는데?

뭐야? 왜 갑자기 저따구로 바꾼거야? 저거 하나만 보고 열심히 공부한 나는 어떻게 되라는거지????

정말 저 소식을 듣고 심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진짜 집에 와서 서울대에 대한 온갖 욕을 쏟아냈다.

니들이 최상위 대학이면 뭐해? 이렇게 깽판을 쳐놓고 가도 되는거야?

그때부터, 서울대에 가야겠다는 나의 의지가 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복수하고 싶었다. 학생을 이렇게 찬밥 취급하는 서울대에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난 너희들이 무시할만한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난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고.

사실 아직 3학년 1학기 내신이 남았기 때문에, 저 때 역전만 한다면 나도 충분히 지역균형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3학년의 진학부장님이 되신 선생님께 찾아가서 지역균형 티켓에 관해 여쭤보았다.

정말 서울대 가고싶다고, 진짜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답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현재 네가 그 셋중 모의고사 성적이 가장 좋고, 서울대가 가능한 점수니까,

   지역균형 티켓은 양보하고 넌 정시로 가라."






냉정히 생각해보면, 나 말고 다른 친구들도 서울대에 정말 가고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때의 난 이성적인 사고따위 할 수 없던 존재였다.



 '닥치고 날 서울대에 보내라고.'

 '내가 지균 넣으면 확실히 붙을 수 있다고. 그리고 정시로 가능하다고? 수능날 몇점이 나올진 아무도 모르잖아?'

 '당신이 내 인생 살 것도 아니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래도 난 저런 말에 휘둘릴 수 없었다. 서울대를 뛰어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서울대 입학처가 어떤 깽판을 치든 서울대에 압도적인 성적으로 합격해야지 나의 위대함을

알려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겨울방학 때 공부량을 더 늘려가며 미친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본격적인 수능 대비에 돌입했다.

1주일에 두번은 수능 시간에 맞춰가며 언수외탐 한세트씩 풀었고, 저녁 시간엔

틀린 부분이든 아리송하게 맞춘 부분이든 철저히 분석했다.

내가 왜 틀렸는지, 그리고 어떤 트릭이 숨어있는지 등 다양한 방면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1월 말 즈음, 정말 미친듯이 어렵다던 2011년 수능을 내가 직접 풀어보게 되었다.

언어 94점, 수리 92점, 외국어 88점. 각각 1등급, 1등급, 2등급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뭐.. 그래도 이정도면 물천 정시로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물리과가 비인기 학과고, 나같이 정말 특이한 사람들만 가기 때문에

입시 결과가 낮을 줄 알았다. 서울대에서도 하위 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입시 결과는 나의 그런 안일한 예상을 산산조각 내주었다.

서울대 내 이과 입시 결과 - 의예과 1위, 수리과학부 통계학과군 2위, 물리천문학부 3위.






뭐? 물천 정시 컷이 세번째로 높다고? 상위 0.5%?????????

내 2011 수능 점수로는.. 물천 합격이 불가능했다. 뭐 저런 미친 과가 다있나..

내가 저런 곳을 지원하는 것인가?

잃어버린 지역균형 티켓을 미친듯이 되찾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부장 선생님께 다가가서 나의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얼마나 절박한지, 그리고 지역균형으로 가면 왜 반드시 붙을 수 있는지를 설명드렸다.

하지만 대답은 같았다.

학교 입장에선 서울대 최대한 많이 보내는 것이 좋고,

넌 정시로 갈 수 있으니 정시로 가라고.. 다른 친구들도 좀 생각하라고..




내가 이기적이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정말 간절히 받고 싶었다.

서울대는 그렇게 나의 기대를 처참히 깨부쉈다.

난 복수심에 이를 갈며 죽도록 공부했다.










그리고 드디어 고3 생활이 시작되었고,

수능 성적과 사실상 같은 성적이 나온다는, 3월 모의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드디어 고3 3월 모의고사. 이 성적이 수능에 직결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 어느 때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풀었다.

고2 겨울방학동안 열심히 공부한 성과가 나타나는 순간이니까..




언어영역.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난이도에도 그렇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11 수능도 풀어봐서 불언어에는 나름 단련이 되어 있었고, 기출 분석도 제대로 했으며,

언어의 기술까지 배워서 나름대로 언어엔 자신이 있었다.

나름 적절히 시간관리를 해가며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아니, 한 지문을 못 보고 그냥 넘어가버린 것이 아닌가!

시간은 2분이 남았는데 지문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지문은 다 찍고 마킹을 해버렸다.

하지만 멘붕할 새는 없었다. 어차피 나의 주력은 수리영역이었다.

애초에 수능때도 이 전략으로 밀어부치기로 했다. 11수능 수리가 엄청 어려웠으니,

수리가형에서 미친듯이 높은 점수를 받아 부족한 언어를 메꿔버리자.

대망의 수리영역 시간. 난이도는 적당한 것 같았다. 시간 배분 적당히 해 가며 풀었는데,

문제는 29번. 너무 쉬워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던 행렬과 그래프 단원 문제였는데,

경로를 구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경로의 정의를 잘 모르지 않았던가!

난 그래서 내 나름대로 경로의 정의를 새로 내리고 풀었다.

외국어 영역. 그렇게 어려운 느낌은 받지 않았다. 무난무난하게 풀어나갔고,

마지막 과학탐구 영역도 내가 예상한 범위 내에서 출제되었다.

시험 결과,

언어 88점, 수리 가형 92점, 외국어 100점, 과탐 47 50 50점

전부 1등급에, 수리는 표점이 168점인가? 그랬다. 가형 1컷이 60점대였던 시험이었으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언수외탐3 전국 50등에 해당하는 전국 백분위]










의 결과였다.

언어의 경우, 원래 틀렸던 몇 문제와 찍어서 대거 틀린 문제들,

그리고 수학의 경우 미분 실수로 4점 하나 나간것이랑, 경로 정의 몰라서 나간 것들을 제외하곤

거의 틀린 문제가 없었다.

전국 50등정도 스케일이면.. 진짜 메이저 의대도 가능한 스케일이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정도면

문을 부시고 들어갈 수 있었다.

뭔가 인간승리를 한 기분이었다. 고2 11월에 한 전교 1등과는 차원이 다른 전교 1등이었다.

내 원점수와 450점과의 차이보다 내 원점수와 전교 2등의 원점수 차이가 훨씬 컸다.







고2 겨울방학동안 난 정말 엄청 성장했다.

뼈아픈 고통 속에서도 계속 열심히 한 노력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혹자는 노력이 배신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난 노력이 날 배신할 수 없도록 했다.

내가 완전히 날 지배했다. 모든 것이 나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다.

이대로만 간다면, 정시로 가도 물천 합격할 수 있다.

기다려라 물천, 내가 간다.

기다려라 서울대, 입시판을 이렇게 더럽혀놓은 댓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3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후, 높은 전국 백분위의 버프를 받아 공부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내신 공부도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수능 공부도 비중을 점점 높였다.

고3이 되니 모의고사도 엄청 자주 봤다.

3월 모의를 보자마자 4월 모의를 보는 것이 아닌가?

4월 모의는 생각보다 쉬웠다.

원래 수학에서 엄청난 고득점을 얻는 전략을 세웠었는데, 4월에선 쉽게 먹히지 않았다.

재수생, 반수생이 없는 상황에서 1컷이 85점정도인 무난한 난이도로 나왔고,

나의 결과는 언수외 98 96 100.

과탐에서도 한두개씩 틀려서 전국 백분위는 상위 약 0.2%정도가 나왔다.

3월에 비해선 꽤 떨어졌지만, 그래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가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공부를 이어갔다. 주위 사람들은 수능에 EBS가 70%나 반영된다고 하며

EBS 문제를 푸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난 EBS따위에 휘둘리지 않았다.

내 방식대로만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내가 짱이니까..

EBS따위 살 돈으로 차라리 만화책을 사자는 마인드로 공부했다.

내신 중간고사에서도 전 과목 1등급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를 받았다.

내신이 끝나고 나서 이제 수능 올인형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기말고사 준비는 기말 시작 3주 전부터 슬슬 시작하기로 하고, 그 전까진

무조건 모든 자습 시간을 수능에 투자하기로 했다.

수업을 듣고 나면 하루에 대략 6시간정도의 공부 시간이 잡혔는데,

언수외탐 각 과목을 최소 1시간씩 공부하고 남은 2시간은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는 식으로 했다.

언어 기출 7개년도 4회독째에 접어들었으며 언어의 기술도 3회독을 하고 있었고,

수리랑 외국어 기출도 2회독째에 들어갔다.

이렇게 내 페이스대로만 공부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다.

실제로 3, 4월 모의평가 성적도 극상위권의 성적이 나왔고, 집에서 푸는 모의고사도

꽤 점수가 잘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망의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는 날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에서 벗어난 형태로 나오게 되는데...

대망의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이 때 아침까지만 해도 난 별로 걱정하지 않았고, 긴장도 하지 않았다.

3월, 4월 모의고사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쌓일 대로 쌓인 나의 공부량이 있었기에

난 패기 넘치게 6평을 치를 수 있었다.

언어영역.

문제 난이도가 엄청 쉬웠다. 98점을 받은 4월에 비해 훨씬 쉬웠다.

다 풀고 시간이 20분정도가 남았다. 언어를 풀고 이렇게 시간을 남긴 적이 없었는데.. 뭔가 약간 불안하긴 했다.

수리영역.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문제를 꼼꼼히 풀었다. 30번까지 다 풀고 나니 남은 시간이 50분.








         [남은 시간이 50분]






......

아니 뭐라고? 그렇게 검토까지 해가며 꼼꼼히 풀었는데 50분이나 남았다고?

난 내 시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장난 것이 아니라 진짜 50분이 남았던 것이다.

난 그대로 남은 50분동안 잠을 청했다.

외국어영역.

난이도는 무난무난했다. 3월, 4월 다 100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별 문제 없이 다 풀고 10분정도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분동안 어려웠던 빈칸 문제 하나의 답을 고민하다, 결국 답을 고쳐서 냈다.

탐구영역.

평소 기출 풀던대로 풀었다. 난 물2, 화1, 지1을 선택했는데, 특히 지1이 엄청 쉬웠다.

결과는?

언어 95점, 수리 100점, 외국어 98점, 물2 50, 화1 47, 지1 50점

원점수만 놓고 보자면 사상 최강의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언수외 300이 전국에 깔렸다는 것이다.

6평을 치르고 난 뒤, 진짜 공부를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야 나 언수외 300 나옴~" 이러고 다녔다.

난 언어 95점인데.. 나보다 언어 못보던 친구들이 전부 96~98, 혹은 100점을 받았다.

뭔가 낌새가 상당히 안좋았다. 수리 100점도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성적표가 나오고 나니,

언어는 3등급이었으며, 수리 백분위는 처참했고, (만점자 수도 엄청 많았다.)

나의 전국 백분위는 상위 1% 정도로 뚝 떨어졌다.

나보다 언어를 잘 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다 EBS에서 나왔던 지문이었다고 한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 난 실감했다. EBS는 정말 사기라고.

왜 다들 EBS에 그렇게 집중하는지 알 수 있겠다고..

난 부랴부랴 EBS 반영 교재를 사들기 시작했다.

내 실력이 불안했다기보다, 저런 경향의 문제를 내는 평가원이 무서웠다.

수능도 저렇게 포세이돈급으로 나오면 난 대학 어떻게 가지?

원래 수리영역에서 표점 뻥튀기해서 갈 생각이었는데? 저러면 뻥튀기도 안돼잖아?

왜 개나소나 100점 나오는 시험을 내고 있는거야???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인터넷 수능까지 거의 다 풀었다던데, 난 수능특강도 안풀었다.






더 큰 문제는, 곧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수능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여름방학에는 서울대학교 특기자 전형 자기소개서도 써야 하는데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닥쳐왔다.







일단 마음을 정했다. 기말고사까진 최선을 다하자고. 혹시 몰라?

기말고사에서 내가 내신 합산 전교 2등으로 올라서면 나한테 지균 티켓을 줄지..

기말고사는 무난히 치렀고, 결과적으로 올 1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내 위에 있던 두 친구도 올 1등급.

결국 내신 총합 1.08등급으로 전교 3등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내 위에 1.01, 1.04가 있었다.)

이제 지역균형 티켓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영영 사라진 것이었다.





내신이 끝나서 이제 엄청난 양의 자습시간이 확보되었다. 매일을 방학과 같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 하루 2시간 정도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특기자전형 자소서를 쓰는 것에 투자했고, 주말마다

서울대 정시 논술 준비 및 특기자 면접 준비도 했다.

다행히 우리 고등학교에 '창수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츤데레끼가 많으신 선생님이 계셔서

서울대 논술, 구술 준비를 엄청 잘 도와주셨다.

그 선생님께서 서울대 정시 기출이나 특기자 기출 문제를 가져다주면 내가 풀고, 그걸 쌤이 첨삭해서 돌려줬다.

논술 첨삭이 좋은 퀄리티로 이루어져서 난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수백만원씩 하는 논술학원에 다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수시 준비를 하는 시간 이외에는 전부 EBS 문제를 풀었다.

진짜 1주일마다 책 2~3권씩 끝내갔다.

폭풍과 같은 기세로 공부를 하니 8월 초까지 수능에 반영되는 모든 수능특강, 인터넷 수능 교재를 다 풀 수 있었다.

문제는, 고득점 N제와 수능완성.






언어 고득점 300제와 외국어 고득점 330제도 반영된다는 말을 듣고 이 문제집도 시간을 재서 풀었다.

언어의 경우 하루 30문제씩 30문제 푸는데 해당하는 시간을 줬고, 외국어도 33문제씩 50분 주고 풀려고 했다.

결과는?

언어 시간내에 푼건 겨우 20문제 뿐이었고, 외국어는 50분 지났을 때 겨우 20번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다.

정말 미친듯이 어려웠다. 이 문제대로 수능에 나온다면, 난 정말 처참하게 털리고 말 것이리라.. 이런 생각을 했다.

그냥 고득점 N제니까 모든 문제가 이렇게 나오진 않겠지.. 하며 시간 재는 것을 포기하고 풀었다.

외국어의 경우 한 세트를 푸는데 대략 80분정도가 걸렸고, 평균적으로 2~3개 틀렸다.

진짜 고득점 N제를 푸는 10일간은 죽을 맛이었다.

고득점 N제를 풀고 나서 수능완성을 풀기 시작했다.

완성은 그나마 고득점 N제보다는 쉬웠다. 하지만 그래도 어렵긴 어려웠다.

게다가 완성은 전 과목이라 분량도 만만치않게 많아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EBS를 풀면서도 나름 기출문제도 분석하고, 개인적인 공부도 많이 했다.

너무 EBS에만 올인하다간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하루 6시간정도는 EBS를 공부했고,

4시간정도는 내가 예전에 공부하던 방식대로 했다.

뭔가 EBS에 내 공부가 지배당한다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진짜 이런 공부는 다시는 하기 싫었다.





EBS를 풀며 재수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번 한 번에 물천에 붙는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이다. 저 330제같이 더러운 문제집 다시는 풀기도 싫다.

오류투성이 EBS따위에 내 인생을 낭비하진 않을 것이다.

라는 마인드로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9월 평가원 전까지 EBS 반영 교재를 다 풀 수 있었다. 비록 1회독 뿐이었지만, 나에겐 1회독이면 충분했다.

애초에 EBS따위에 의지하긴 정말 싫었다. 하지만 물천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는 것 뿐이었다.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EBS 교재를 봐야 한다니.. 정말 모순된 말이지만 우리 나라 현실이 그랬다.

그리고 대망의 9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시작되는데..

9월 모의평가.

이제 진짜 수능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보는 평가원 모의고사.

내가 과연 EBS를 공부한 효과는 있었을까?

나의 실력은 현재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9평을 치르기 직전 진짜 온갖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수능에서 엄청 망해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 봐야 아는 법. 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언어 영역. 6평에 비해 약간 어려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3월 모의고사와 6평을 빼고

언어영역 점수는 항상 98점이었기 때문에, (이상하게시리 100점은 한 번도 받아보질 못했다.)

그렇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6월과 달리, EBS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를 다 풀어도 계속 고민이 되는 두문제가 있었다.

내가 그동안 배운 독해 스킬이나 언어의 기술에서 배운 내용으로도 잘 풀리지 않았다.

아직 내 내공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훈련을 덜 한 것인가?

어쨌든, 두 문제를 아리송하게 푼 채로 언어영역을 마무리했다.

다음 수리영역. 6평보단 어려웠다. 근데 쉬운건 변함이 없었다. 60분동안 검토까지 마치고 나서

난 큰 한숨을 쉬었다. 이 난이도면 분명 수능에서도 만점이 수두룩하게 나올텐데..

수학 100점의 메리트가 전혀 없는거 아냐?

수학 고득점을 노려서 표점 뻥튀기를 노리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답답했다.

만점 표점이 140도 못넘을 것 같았다. 11수능 풀어보고 그 정도의 난이도를 기대했던 나에겐 꽤나 안좋은 소식이었다.

다 풀고 40분동안 수능때도 이 난이도로 나오면 어떻게하나.. 걱정을 하며 온갖 잡생각을 다했다.

외국어영역. 난이도가 6평에 비해 훨씬 어려웠다. 특히 빈칸이 엄청 크리티컬했다.

분명 EBS에서 본 지문이었는데.. 10초컷을 하기가 힘들었다.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낚시의 위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처음 찍은 답은 고치면 안 된다는 것을 믿어서 그냥 스트레이트로 풀어나갔다.

외국어 100점을 많이 받아본 자로서의 자신감을 믿었다.

마지막 탐구영역. 탐구는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내가 탐구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문제가 쉬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별 감흥 없이 풀었다.

결과는?








      [언/수/외/물2/화1/지1 96 100 91 50 50 50]







언어와 외국어는 2등급 상위권이었고, 수탐은 만점이었다.

전국 상위 0.3%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외국어가 2등급으로 내려간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EBS 버프를 많이 받는 언어와 외국어에서 털린 것이 참 심각했다.

수학 난이도가 엄청 쉬워서 이번에도 1컷은 96점이었고, 100점인 것의 메리트는 거의 없었다.

다행히 물천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오긴 나왔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수능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나에겐 [전교 1등]이란 타이틀은 어떤 위안도 되지 못했다.

[전교 1등]=[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합격]이란 등식은 항상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9평 성적이 어떻게 나왔든 난 좌절할 시간이 없었다.

수능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남들이 좌절할 시간에 난 공부해서 실력을 더 늘려야 한다.

아직 내가 올라가야 할 계단은 엄청 많이 남았다. 올라가야 한다.

이 때의 난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수를 하나 두었다.

EBS를 다 던져버리고, 예전의 내가, 공부 효율이 가장 좋을 때의 내가 하던 공부 방식으로 마무리 정리를 했다.

EBS가 정말 증오스러웠다. EBS따위에 내 꿈을 잃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면으로, EBS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수능에선 EBS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ㅎㅎ)



1주일에 5일정도는 모의고사 풀세트를 풀었다. 9월 말까지 7개년 기출 언어 5회독, 나머지 과목 3회독을 다 끝냈다.

주말에는 서울대 특기자 구술 면접 준비 및 정시 논술 준비를 했다. 두 가지의 전형 모두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츤츤대는 창수신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논술 첨삭도 엄청 잘해주셨고, 모르는 구술 문제도 많이 풀어주셨다.

그리고 하루에 1~2시간씩 한 스타2에게도 많은 버프를 받았다.

매일 집에서 게임을 한 덕분에 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고, 공부에 완전히 찌들어 지쳐 쓰러질 정도까지 가진 않았다.






10월이 되자, 슬슬 풀 문제가 부족했다. 왠만한 사설 문제도 실력 점검을 위해 풀어봤고,

질이 안좋다던 EBS 파이널 모의고사도 풀었다. (물론, 점수는 개판이었다.)

그래서 문제를 찾던 도중, '오르비'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어? 여기 점수 입력하면 전국 등수도 추정해주네?"

"포만한 모의고사? 이게 뭐지?"

오르비는 나에게 신세계를 불러다주었다.

이 때 난 오르비 닉네임을 '츤데레창수'라고 지었다. 날 맨날 도와주시지만

계속 틱틱대는 창수신님이 정말 좋아서 그랬다.

그리고 96 100 91 50 50 50. 9평 점수를 입력했다.

가형 기준 전국 상위 약 0.3%정도. 언어와 외국어가 망했지만, 나름 수탐 버프를 잘 받은 것 같았다.

또한 거기엔 좋은 외국어 문제와 수학 문제들이 많았다.

처음으로 오르비에 올라온 포만한 모의고사를 풀어봤는데,

채점해보니 86점. 1년만에 90점 아래의 점수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진짜 고난이도였다. 100분 꾸역꾸역 써간데다 풀이가 잘 떠오르지 않는 문제까지 있었다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에 오류가 꽤 보였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배포하던

'컵라면'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던 분에게, 몇몇 문제의 오류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오류가 수정되었고, 수정 후의 나의 점수는 93점.

다행히 90점 아래의 점수로 마무리짓진 않았다.

오르비를 둘러보다 보니, 포만한 모의고사 외에도 '포카칩 모의고사'라는 좋은 사설 모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풀 문제에 허덕이고 있던 난 그 길로 서점에 가서 '포카칩 모의고사'를 사왔다.







'포카칩 모의고사'는 정말 환상적인 모의고사였다.

여태까지 질 나쁜 사설을 풀던 난 문제의 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산량도 적당했고, 아이디어가 좋으면 금방금방 풀리는 문제들이 많았다.

이 모의고사 덕분에 나의 수학 스킬이 5~10%는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10월에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제일 편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풀 자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능날은 점점 다가오고.. 남은 날짜가 한자릿수로 줄었다.

반 분위기는 정말 싱숭생숭했다.

벌써 대학생이 되서 놀러다니는 친구도 있고, 벌써 재수를 결심한 친구도 있었고,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는지 그냥 노는 친구도 있었고,

아직 늦지 않았다며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에 휘둘릴 시간도 없었다. 귀마개를 착용하고 그냥 묵묵히 공부했다.

약간의 소음은 오히려 수능 고사장 적응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대로 공부를 했다.






수능 2일 전, 이날은 새로운 문제를 풀기보단 그동안 풀었던 것들을 다 복습했다.

정말 오랬동안 본 책을을 보는지라 한 권 다 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능 하루 전, 이 날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이날 공부해서 오르는 성적보다,

컨디션 조절을 잘 해서 오르는 성적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짜 하고싶었던 스타2를 실컷 했다.

맨 처음엔 유즈맵을 시작했다. 승패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게임들을 했다.

그런데, 뭔가 래더게임이 끌리는 것이었다.

래더게임에서 계속 진다면 컨디션이 안좋아져서 수능을 망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끝내 래더 서치를 눌러버렸다.

첫판은 가볍게 이겼다. 상대방이 못했나보다.

또 래더 서치를 눌렀다.

두번째 판도 나의 기막힌 전략으로 승리했다.

또 래더 서치를 눌렀다.

세번째 판도 이겼다.

또 래더 서치를 눌렀다. ...................

이렇게 난 여섯 판을 내리 이겨버렸다.

이 때의 나의 기분은 정말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진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밤 10시쯤이 되어서, 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수능 당일날이 되었다.

드디어, 수능 당일날이 되었다.

전날 스타2 6연승을 한 버프를 받고 나니, 난 정말 모든 것을 얻은 느낌이었다.

수능 정도는 가볍게 다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샤워를 하고 방을 나섰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공부와 스트레스와도 작별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행복했다.

재수라는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무조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열심히 했고,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실패따윈 절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수능의 초월자니까..]

                 [나는 신의 선택을 받은 신의 아이니까..]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감을 믿고, 수능 시험장을 향해 갔다.

내가 수능을 치른 고등학교는 당곡고등학교.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가니 우리 학교 후배들이 있었다.

내가 멘토링 해준 후배들이었다.

후배들이 질서있게 경례를 하고 나에게 초콜릿과 차, 그리고 편지를 주었다.

그리고 난 그들에게 말했다.

올해의 수능 만점은 나라고. 꼭 수능 만점을 받고 오겠다고.

그렇게 자신있게 손을 흔들며, 교문으로 들어섰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고등학교 수험생 중 이렇게 패기넘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고 한다.







수능 고사장에 들어갔다. 낯선 장소에서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새롭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시험을 치르는 반에 친구들도 몇 명 들어왔다.

고등학교 동창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는 사람이 꽤 있었다.

뭔가 친구들과 같은 반에 있으니 더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후배들이 준 초콜릿을 먹고, 편지를 읽어봤다. 그동안 도와줘서 참 고마웠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언어영역 시작 전까지, 난 받을 수 있는 모든 신의 가호를 받았다.

난 [신의 아이]니까..








대망의 수능, 언어영역이 시작되었다. 평소 모의고사를 치를 때와 달리 듣기부터 바로 시작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듣기 방송을 하는 도중 쓰기 문제를 풀었지만, 난 그런거에 개의치 않았다.

그냥 듣기 푸는 시간엔 듣기를 풀었다. 역시 듣기라 그런지 난이도는 무난했다.

다음 쓰기 및 어법. 이 부분도 그닥 난이도가 있는 부분은 아니라 무난무난하게 풀어갔다.

근데, 11번에서 무언가 평가원스럽지 않은 문제가 나왔다. '보기'에 의한 근거에서부터 추론하는 유형이 아닌,

단순한 어법 지식을 묻는 문제였다. 거기다 3점짜리 문제였다. 하지만 난 본능적으로 답을 찍었고,

여기에 시간을 더 투자하지 않기로 하고 넘어갔다.

난 평소 풀던 방식대로 비문학 문제부터 건드렸다.

다행히 과학 지문에서 내가 잘 아는 불확정성의 원리 관련 내용이 나왔고, 기술 지문도 친숙한 내용이 나왔다.

비문학 지문이 전부 그렇게 어려운 내용들이 아니어서, 쉽게 풀 수 있었다.

다음은 문학. 문학이 좀 많이 걱정되었다. 수능 공부를 하며, 문학만큼은 정복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웬 떡인가? 고전 시가 한 편과 고전 소설, 그리고 현대 소설 모두 EBS에서 봤던 내용이다.

내가 정리했던 것까지 다 기억이 나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기억이 났다.

이게 웬 떡인가?? 하며 문제를 꼼꼼히 풀었다.

방심하지 않고 차분히 지문에서 근거를 찾아가며 답을 골랐다.

EBS에서 봤던 지문들이라 근거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문제를 풀다.. 한자성어 문제에 도달했다. 그런데 보니 한자성어가 1점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모르는 한자 성어가 3개나 나왔다.

순간, 한자 성어 문제가 쉽다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렇지만 후회만 할 수는 없는 법! 그냥 본능적으로 찍고 넘어갔다.

언어 영역 시간이 끝나고,

고사장은 참 조용했다.

나랑 내 친구들은 수능 끝나기 전까지 답 맞추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자고 해서 나도 묵묵히 있었다.

그냥 화장실에 다녀오고, 푹 쉬었다.






다음 수리영역.

나의 [신의 아이]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왔다.

하지만 역시 나의 기대는 산산히 무너졌다. 9평에 비해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이번에도 결국 1컷 96점짜리 시험인가..' 하며 묵묵히 풀었다.

1컷이 몇점이든, 수리에선 무조건 100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 문제를 풀 때마다 검토를 3번씩 해가며 풀었다. 실수를 절대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29번까지 변별력 있는 문제를 거의 찾지 못했다. 대략 70분쯤 걸렸던 것 같다.

마지막 30번 문제. 이녀석은 난이도가 좀 있어보였다.

하지만 주어진 예시를 토대로 숫자 몇 개를 대입하니 규칙성이 금방 보여서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30번도 검토까지 마치고 나니 남은 시간은 20분.

더 이상의 검토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난 이번 시험에서의 변별력은 무엇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제발 수리 1컷이 96보다는 낫길 빌 뿐이었다.

수리 영역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난 평소 모의고사 때 하던 것처럼 점심을 먹지 않았다.

애초에 고1때부터 모의 푸는 날은 한 끼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낯선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는 느낌이 즐거웠다.

수능의 초월자로서의 본능이었을까? 이번 시험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친구들이 먹던 도시락을 좀 뺏어먹고,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수능 끝나고 할 일, 그리고 나중에 대학 가서 할 일 등..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다음 외국어영역. 난 배를 거의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졸음에 대한 걱정은 그닥 하지 않았다.

역시 언어영역처럼 듣기가 먼저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듣기 시간에도 EBS 버프 덕인지 답을 바로 찍고

독해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난 그냥 듣기만 풀었다. 듣기 시간엔 듣기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듣기 문제는 큰 탈 없이 넘어갔고, 독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총 33문항 중 10문항 정도를 EBS 버프에 의해 쉽게 풀었다.

다 풀고 나니 시간이 20분정도 남았다. 진짜 고3때 본 모든 외국어 시험중 가장 쉬웠다고 할 정도로 난이도가 평이했다.

1컷이 높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함께, 무언가 이번에 진짜 수능 만점이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지막 탐구영역. 난 화1, 지1, 물2를 선택했기 때문에, 우선 화1을 풀기 시작했다.

탐구영역이 되니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치솟아서, 평소에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n분컷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보기도 금방금방 읽고 넘어갔다. 화1 다풀고 나니 남은 시간 15분.

물론 검토를 하긴 했지만, 대충대충 하고 넘어갔다.

다음 지구과학1. 지1답게 엄청 쉬운 난이도였다. (개정 전이었으니까..)

다 푸는데 총 10분정도(??)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20분간 그냥 딴생각을 하며 보냈다.

마지막 물리2. 이 시험만 보면 수능 끝이라는 생각에 정말 흥분되기 시작했다.

나의 물리력을 총 동원하여 15분간 20문제를 풀어냈다.

그리고 심심해서 답 갯수를 세보니.. 1,2,3,4,5 전부 4개씩 있지 않았던가!

무언가 불안했다. 내가 과탐 7개년어치를 풀면서 답 갯수가 정확히 4개씩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문제 검토에 돌입했다. 다른 풀이로 바꿔서 풀어보기도 하고..

그래도 내가 푼 답이 계속 맞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고민한 나머지, 한 문제를 어거지 풀이로 풀어놓고 답을 고쳤다.

답 갯수가 3,4,4,4,5개가 되었다. 이제야 좀 맘이 편해졌다.

시험이 종료되었다는 벨이 울리고,

나는 해방감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짜 이 때의 난 진정한 [신의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우선 서울대 특기자 1차 발표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 합격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가채점을 시작했다.

아직 탐구 답안은 나오지 않았고, 언수외 답안만 메가스터디에 올라왔었다.

메가스터디에 가채점표에 적어온 언수외 답을 한 번에 다 적고,

한 방에 채점! 하는 버튼을 눌렀다.









        언어 - 98, 수리 - 100, 외국어 - 100







저 점수를 보고 난 믿을 수 없었다.

저게 내 점수인가? 진짜 내 점수인가????

고등학교 3년간 받은 점수 중 가장 높은 언수외 점수를 받았다. (아쉽게도, 언어가 100점이었던 적은 없었다.)

다시 한 번 채점을 돌려봤다. 점수는 같았다.

홀수형 짝수형 헷갈렸는지 확인했다. 분명 홀수형이 맞았다.

볼을 몇 번 꼬집어보고, 난 컴퓨터 앞에서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

나의 3년간의 보상이, 드디어 보답을 받는 순간이구나..

미쳐 날뛰니까 아랫층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그만 좀 뛰라고.

하지만 그 때의 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분에게 말했다.

"제가 언수외 298점이라고요!!!!!!! 한 문제만 틀렸다고요오오오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분은 축하한다고 말하며 오늘만 봐준다고 하셨다.

난 주위 지인들, 그리고 특히 날 많이 도와주신 담임선생님과 창수신님께 문자를 보냈다.

언수외 298이라는 결과를 알릴 때, 정말 심장이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이 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수능 망했다고.. 언수외 423등급 나왔다고..

정말 친한 친구였기에, 난 잠시 즐거움을 감추고 친구와 함께 PC방에 갔다.

가서 스타2 팀플 몇판을 때리고, 탐구 과목 점수를 확인했다.

화1 47, 지1 47, 물2 47이었다.

탐구영역을 풀 때 방심했던 것에 대한 타격이 여기서 나타난 것 같았다.

화1, 지1은 어이없게 보기를 잘못 읽어서 하나씩 나갔고, 물2의 경우 마지막에 고친게 틀렸었다.

그냥 1,2,3,4,5 전부 4개씩 있는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난 상관없었다. 인생 최고의 수능 점수를 받았으니까.

집에 와서 오르비에 올렸다.

98/100/100/47/47/47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정시 가능한가요?

답변은?








"님 훌리 아님?"

"저정도면 인설의는 그냥 가는 점수인데요?"

"물천 문 부시고도 남음 ㅇㅇ"







내가 드디어 물리천문학부의 문을 여는구나..

정말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3년간 물리천문학부를 지망했던 [신의 아이], 미래의 하얀 마법사의 여정은

최고의 결과를 맞이하며 끝나게 되........









는줄 알았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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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logue -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곧 있을 특기자 면접 준비를 했다.

특기자 면접 당일, 물리 문제와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물리 문제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난 기껏해야 고등학교 심화 문제 및 특기자 기출, 그리고 하이탑 정도만 공부했는데

대학교 과정을 알아야 푸는 문제들이 나왔다.

난 난생 처음 보는 문제에 당황하며 어버버.. 하며 나왔다.

광탈을 예상했다. 사실 난 지균 준비생이었는데..

1년만에 특기자를 준비하는 것은 역시 무리였나보다.

다행히 수학 문제는 수리영역 1등급이면 무난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와서

다 풀긴 풀었다.





특기자 발표를 기다리는 도중, 성적표가 나왔다.

사실 성적표 공식 발표일 하루 전 담임선생님께 성적표가 도착하는데,

난 너무 궁금한 나머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쌤.. 저 가채점대로 점수 나왔나요?"

"어..? 너 등급이 왜이러니? 제대로 적어온 거 맞아?"

"네??? 점수 이상하게 나왔나요??"

"장난이야 쨔샤 ㅋㅋ 그대로 나왔어. 올 1등급 축하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아보니, 가채점은 틀리지 않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수리 1컷이 89점으로 꽤 낮았다.

만점자 수도 400명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된다면 난 나름 수리 가형의 버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르비에서 전국 추정 등수가 나왔다. 내 점수를 입력하니,

전국 추정 등수는 가형 기준 0.1%. 전국 160등 정도에 해당하는 백분위였다.

전국 160등 정도면 물리천문학부의 문을 부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난 오르비에서 놀기 시작했다.

'츤데레창수'라는 닉네임으로 계속 물천 합격을 기원했고,

사람들은 계속 기만이라고 했다. 님 점수면 100% 붙는다고..

이 때의 난 무슨 기분이었을까? 어떤 심정으로 오르비에 글을 올렸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때의 행복하던 나만이 알고 있겠지.

특기자 결과는 아쉽게 탈락.

뭐.. 면접을 못봤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하지만 그 때의 난 물천에 떨어졌다는 분노에 휩싸여

"교수님이 절 떨군 것을 후회하게 해줄겁니다. 물천의 Door Breaker가 되겠습니다."

라는 패기있는 글을 올리며, 정시 합격에 대한 염원을 불태웠다.

그리고 곧바로 논술 공부에 들어갔다.

뭐.. 논술 공부래봤자 매일 집에서 오르비에 글올리고,

온게임넷에서 하는 스타 중계 보면서 하루에 한 문제 푸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한 지문의 모든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소문항 하나 푸는 수준.. 정말 대충 공부했다.

지균 준비하면서 얻은 1.08이라는 내신 등급 버프로 서울대 정시 내신은 40.00 만점이었고,

결국 깎일 곳은 논술밖에 없었다.

오르비에서 정시 논술 준비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랑 친해졌다.

계속 이 점수로 물천 되나여?? 라고 묻고, 실제 물천 지원한 것을 인증까지 하니

오르비에선 완전한 물리 덕후로 인식받게 되었다.

2011년 말쯤, 난 슬슬 오르비에서 날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뭔가 닉네임이 츤데레창수?라면 이상하니까.. 그리고 쌤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다간

큰일날 것 같으니까.. 닉네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닉네임을 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럴 때 갑자기 뙇! 하고 흐음.. 던파 만화에 나오는 그 똥글똥글한 캐릭터 이름이 뭐였지?

아! 레바였구나!

하고.. 닉네임을 '레바'로 바꾸게 되었다.

12월 말에 연세대 물리학과 우선선발 합격(+상위 3%에게 주는 독수리장학금)이 되었다.

어쨌든, 연세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12학번'이라는 타이틀.

2012년 1월 16일, 정시 논술을 치렀다.

논술 문항은 무난무난했다. 물리 문제는 쉬웠고, 지구과학 문제는 창수신님의 버프로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시 발표까지 정말 하릴없이 기다렸다.

그 때, 오르비의 '컵라면'이란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권유로

메이플을 시작했다.

메이플 캐릭 이름은? '수학왕난만한'.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었다.

그렇게 오르비에 메이플을 전파하며, 서울대 합격 소식을 기다렸다.

그동안 오르비 정모에 나가기도 하고, 에피옵티무스라는 클럽에도 가입하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성과의 만남도 참 많아졌다.

맨날 남고에서만 지내다 보니 남자들과의 대화에만 익숙해졌는데,

사회에 나가니 참 달랐다.

그리고, 2월 2일이 왔다. 이날도 난 신촌에서 물천 선배인 나카렌님, 그리고 물량공급님,

메이플을 전파한 컵라면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께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축하한다. 서울대 합격이다."















응? 뭐라고?










사실 저 이야기를 내가 공부하던 도중에 들었으면 정말 기뻤을텐데..

그렇게도 3년간 염원하던, 꿈의 타이틀을, 신촌에서 밥 먹던 도중에 얻었다.

갑자기 밥먹다 서울대생으로 전직한 것이다.

그냥 웃음도 안나왔다.

"아 합격했어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뒤,

묵묵히 식사를 했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서울대 물천 붙음."

이렇게 시크하게 대답하고 밥을 계속 먹었다.

그러자 다들 축하한다고 하며, 뭐 합격 100% 보장이었으니 저렇게 대충 대답할만도 하지 ㅋㅋ 라는 반응을 보였다.

신촌에서 놀다 집에 들어갔고,

오르비에 합격 인증글을 올렸다.

역시 레바님이라면 합격할 것 같았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고, 축하 댓글도 많이 달렸다.

합격 통지서를 뽑고 나니 이제야 나의 목표를 이뤄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 3년이란 길고 길었던 시간이었다.

머릿 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2월 3일, 고등학교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내에서 수능 성적 1등으로 1등상을 받았다.

단상에서 상을 받고, 난 이렇게 외쳤다.















          - [ 제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12학번입니다!!!!!!!!! ] -












- The End -
블로그 주인 사진Author물량공급
대학입시, 수시, 정시, IT, 맛집탐방,리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개인 블로그입니다.
  1. 프로필사진나도 물덕2015.06.13 11:35 신고 + 

    핵꿀잼.. 이 수기는 전설입니다

  2. 프로필사진고사미2015.06.17 08:41 신고 + 

    이틀에 걸쳐 읽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심..